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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취향과 판단입니다.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이 시점에 새롭게 잡지를 만드는 것은 명백하게 시대착오적인 일입니다. 2010년대에 이미 무수한 잡지가 독자 수의 급감이라는 위기로 인해 잠정 휴간 혹은 폐간의 길을 걸었습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이 높았던 잡지들 역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형식 및 내용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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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건강 상식과 상식의 건강</strong>
새로운 증상, 건강음식집착증(Orthorexia Nervosa) 건강에 관한 상식을 틀린 것으로 만드는 한 가지 증상이 최근 정신병리학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건강음식집착증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건강에 좋은 음식 혹은 식습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면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새로운 유형의 섭식 장애다. 건강이라는 개념이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르게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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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이름은
이쯤 되면 문장이다. 이국의 문법으로 빚어진 언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커피의 이름이 이렇게나 길고 복잡해진 최근의 동향은 그 정도가 심하다. 따지고 보면 커피의 이름은 항상 낯선 것이었다. 프림 하나, 설탕 둘의 인스턴트커피에 익숙했던 때 헤이즐넛, 블루 마운틴, 조금 더 귀동냥이 있다면 모카 자바같은 커피의 이름이란 항상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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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만화의 특수성</strong>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비록 동시간적 대면이 아닐지라도, 비실시간적 동기화로서의 이 접촉이 반갑습니다. 『취향과 판단』에서 연재하게 된 신정환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과 소리의 문제들을 다룰 것입니다. 관심사가 넓은 편이라 제한된 지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텍스트들의 “디제시스”를 다루는 방식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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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대남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페미니즘 플랜 B ①</strong>
‘이대남’, 그들은 능력주의에 기반을 두고,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며, 신자유주의에 동의한다고들 한다. 이대남의 중심에 놓인 안티 페미니즘 정서는 공정성을 추구한 결과로 설명된다. 페미니즘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지향하는 공정의 가치를 위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안티 페미니즘 정서와 이대남을 이전부터 독립적으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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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유한 속 무한이다. 아름다워.”</strong>
‘수학’과 ‘천재’ 혹은 ‘괴짜’의 조합은 <굿 윌 헌팅>(1997), <뷰티풀 마인드>(2001), <프루프>(2005), <박사가 사랑한 수식>(2005), <무한대를 본 남자>(2015) 등 영화에서는 이미 익숙하다. 드라마 <멜랑꼴리아>(김상협 연출, 김지운 극본, 2021.11.10.~2021.12.30. tvN 방영)의 백승유(이도현 분)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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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 정치는 잘 모르는데
정치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하고 있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전공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정치외교학과 졸업하면, 정치하나?” 앞으로 정치를 어느 정당에서 시작하고 싶은지, 보수인지 진보인지 모두 묻는다. 정확히 대답하자면, 나는 잘 모르겠다. 나의 석사 학위 논문의 제목이 『권위주의 국가의 선거 제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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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자동화된 맛과 황교익이라는 제동 장치</strong>
맛 칼럼니스트와 쓴소리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을 둘러싼 논쟁이 한소끔 끓었다가 식었다. 음식과 음식 문화에 관한 맥락적 해설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 왔던 유일무이한 맛 칼럼니스트. 그 이름은 특정한 직업이라기보다는 황교익의 고유명사에 가깝다.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감수성과 지향점이 깊이 배어든 고유한 역할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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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
현재 나는 고려대학교의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세 번째 임기를 채우고 있다. 첫 임기는 석사 과정 재학 중이던 2018년에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제31대 총학생회장의 권한 대행을 맡게 되며 보낸 8개월이었고, 직후의 제32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당선되어 1년을 일한 것이 두 번째 임기였다. 1년 8개월이라는 역대 선배 회장들보다 긴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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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목소리
한 만화가 흥할지 망할지의 여부는 캐릭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기공룡 둘리』 시리즈나 『도라에몽』과 같은 작품들은 그 서사나 설정이 복잡하지 않지만 캐릭터의 매력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효과적인 캐릭터 메이킹 없이는 명작, 아니 수작 반열에도 절대 오를 수 없습니다. 만화 캐릭터는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존재이며 디제시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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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배신
커피는 암묵적으로, 그러나 끈끈하게 지적 재화와 결탁해있다. ‘교육’은 커피 시장의 훌륭한 파생 상품이다. 떡볶이의 철학이 없고 곱창전골의 심오함이 없겠냐마는 내가 떡볶이가 좋아 어딘가로 떡볶이를 배우러 다니는 것과 커피를 배우는 것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익히 짐작하고 있다. 커피를 배운다는 것. 그 독특한 위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배우는 것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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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대남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페미니즘 플랜 B</strong> ②
이 글은 페미니즘을 안티 페미니즘과의 관계에서 재조명하며,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 과정이란 ① 페미니즘을 향한 반발의 주체가 청년 남성일 수 있었던 상황과 ② 반발에 논리를 갖추는 경로, ③ 논리를 가진 반발이 정체성 정치로 구체화 되는 지점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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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자존감 권하는 시대와 자기 성찰</strong>
셀러브리티-인플루언서, 자존감도 상품이 되다 셀러브리티-인플루언서는 2022년 현재를 대표하는 형상입니다. 대중 매체를 통해 구성, 확장된 추상적 이미지가 구체적인 인격을 압도하는 셀러브리티의 특성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명성의 독특한 형식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은 대개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자기 자신을 쇼윈도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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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산 음식, 죽은 음식</strong>
음식 : 생명의 원천 혹은 흔적 음식을 둘러싼 여러 개념 중에서 ‘생명’은 가장 매혹적인 장면을 제공한다. 생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깨끗한 자연의 이미지를 음식이라는 스크린에 홀로그램처럼 영사하여 추상적인 숭고함과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생명의 투영체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생명체의 존속을 위한 동력원, 즉 에너지원 자체이다. 여기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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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조심하면 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요.”
<멜랑꼴리아>(김상협 연출, 김지운 극본, 2021.11.10.~2021.12.30. tvN 방영)는 세 인물의 ‘멜랑꼴리’를 보여준다. 10세에 MIT에 입학을 하며 세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백승유(이도현 분)는 낯선 땅에서 그에게 하나뿐인 친구가 되어주었던 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 깊은 우울에 빠진다. 백승유는 형의 죽음의 원인이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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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페미니즘 플랜B ③
“여태껏 우리가, 페미에게 왜 졌을 것 같아요?” 2021년 4월, 신남성연대 대표 배인규는 페미니즘 규탄 시위에서 시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청중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논리가 없어서?”라고 하자, 그는 반대로 “한국 남성들이 쓸데없이 너무 논리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 남성들이 페미들에게 늘 밀렸던 건 쓸데없이 너무 논리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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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3월은 봄, 채우기 위해 비우는 달</strong>
새해가 밝아오는 시점에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임의로 고안한 역법에 따라 표기된 달력의 숫자가 2021에서 2022로 바뀌긴 했으나 이렇다 할 실질적인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 1월 1일은 그저 2021년 12월 31일의 다음날일 따름이고 2022년 1월 1일 00시와 2021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 사이에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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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1부-지리산 작두』, 맹세의 서사로 읽어보기
만화 『타짜』(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시리즈는 도박판을 둘러싼 서사를 다룹니다. 총 4부 중 첫 이야기인 『타짜 1부-지리산 작두』는 화투게임의 일종인 섰다에 손을 대게 된 주인공 김곤(고니)의 일대기입니다. 고니는 도박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였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한 섰다 판에서 사기도박에 당해 누나의 전 재산에 달하는 돈을 탕진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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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선과 차악 사이에서의 고민, 그리고 대안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3월 9일로 결과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0.7%차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게 승리했다. 그에 비해 군소 정당의 후보들은 2% 이하의 저조한 득표를 받았다. 소수점을 없애면 윤석열 후보는 48%, 이재명 후보는 47%인데, 단순 합산을 하면 95%의 지지를 거대 양당에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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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을까?
다음 이야기는 픽션이며 등장인물, 단체, 지명, 사건은 현실과 무관함을 우선 밝힌다. 가까운 미래,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하나둘씩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는 이 전염병을 더 이상 낯설고 위험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몇몇의 계절성 질환처럼 코로나-19 역시 기술과 과학, 그리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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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클라미디아 대소동</strong>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서 일하던 도중, 산부인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정기적으로 자궁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주 중 가벼운 마음으로 받은 검사의 결과였다. “본원에서 시행한 STD 성 매개 감염 질환 검사 결과 Chlamydia trachomatis, Gardnerella vaginalis, Ureaplasma parvum 양성입니다. 내원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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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 인피니티 사가와 <Back in Black>의 상징성 I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마블 스튜디오가 자사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과 세계관을 활용해 창조한 영화 프랜차이즈입니다. 특정한 영화 한 편 혹은 작은 시리즈를 넘어선 방대한 양의 영상 콘텐츠들이 연합하여 거대한 ‘디제시스 네트워크’를 구성합니다. 마블은 서사의 흐름새와 발표 시기에 따라 MCU 영화들을 페이즈로 구분합니다. 현재 MCU의 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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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 해답은?
4월은 슬픈 달이다. 끔찍한 사고로 많은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냈으며 그렇게 떠나보낸 이들을 기억하는 달이다. 또한 많은 사람을 희생하는 재해를 방지하자고 모두 마음을 다잡는 달이다. 대한민국에서 사고 없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기를,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시민의 목소리는 여덟 번째 기일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슬픈 일을 모든 동료 시민이 똑같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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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소비자의 히스테리와 욕망의 충족 불가능성</strong>
소비자의 이름들 : 호명되거나, 아니면 벗어나거나 소비자를 일컫는 이름들, 예컨대 “프로슈머(producer+consumer)”나 “모디슈머(modify+consumer)”처럼 소비의 형식을 나타내거나, “X세대”, “MZ세대”, “코로나 세대”처럼 특정 세대를 호명하는 과정에 소비의 경향을 덧붙이거나, “합리적 소비자”, “윤리적 소비자”, “행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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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맛. 말할 수 없는 기쁨.
만화 <신의 물방울>이 대중 독자들에게 전한 것은 천재적인 재능과 고도의 전문성 간의 격돌이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와인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백미라면 주인공을 위시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수려하게 늘어놓는 와인에 대한 미사여구, 맛과 그에 대한 감흥을 구술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미려한 작화와 긴장감 있는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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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도시의 골칫거리였던 골목이 핫플레이스로 전생한 건에 대하여</strong>
운치 있는 담장과 삐뚤빼뚤한 계단, 주택과 공장, 그리고 상점가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도시의 골목. 실핏줄이라는 이명처럼 동네 안쪽으로 이리저리 이어져 있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폭 10m 이내의 통로. 골목은 동네 안팎으로 이동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면서 타인과 만나기 위한 사회적 공간으로, 그리고 골목과 동네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도록 하는 정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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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꼭, '단톡방' free life
카카오톡은 1:1과 1:多 대화는 물론 이미지, 동영상, 문서 등의 전송 그리고 대화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 및 일정 관리 기능 모두를 제한 없이, 무료로 제공하는 모바일 메신저입니다. 이러한 경제성과 편의성에 힘입어 카카오톡은 출시 이후 빠르게 기존의 유료 문자 메시지를 완벽히 대체하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았습니다. 95% 이상의 스마트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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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 참여의 현실과 전망
정치 참여에는 단순히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부터 특정한 정치적 의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든,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까지가 두루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청년들은 “정치 참여”를 고려할 때, ‘어떻게 정당에 진입하여 선출직 공무원에 당선될 것인가?’에 주로 골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요즘 이른바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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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전제 오류가 생긴 거야.”</strong>
이 글에서는 내가 드라마 <멜랑꼴리아>(김상협 연출, 김지운 극본, 2021.11.10.~2021.12.30. tvN 방영)에 대한 이야기를 3회에 걸쳐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멜랑꼴리아>는 자신을 ‘수학자’라 지칭하는 인물들의 투쟁과 우울을 다루면서 수학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거기서 발견되는 (수)학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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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 소유물로 이해될 때
“프랑스의 어머니이자 애국자이기도 한 여성” “여성들은 불의를 더 잘 인지할 수 있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나선 극우 정당 후보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의 선거 홍보물에 담긴 내용이다. 여성 잡지처럼 펼쳐진 네 쪽짜리 홍보물에는 평소에 입던 정장 바지 대신 치마를 두른 르 펜이 자녀를 품에 안은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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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 인피니티 사가와 <Back in Black>의 상징성 II
인피니티 사가라는 거대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히어로는 분명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입니다. 토니는 디제시스 안에서는 숭고한 자기희생을 통해 세계를 구했을 뿐 아니라 디제시스 밖 현실 세계에서는 MCU 프랜차이즈의 기틀을 마련한 일등공신이었습니다. 토니는 자신이 무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인피니티 스톤을 사용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으로 타노스에 의해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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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의 생태학
커피 같은 음료와 주전부리를 파는 곳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카페는 그 형태만큼 다양한 기호와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는 “제3의 장소”로 기능한다. 미국의 도시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의 1989년 동명의 저작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처음 소개된 이 개념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가지 “공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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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마르지 않는 빵과 마르는 사람들</strong>
최근의 제빵 산업은 ‘갓 구운 빵’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오븐에서부터 풍겨 나가는 응축된 빵 냄새가 가게 주변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갓 구운 빵’이라는 기호는 소비자와 베이커리 업계 사이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으로 자리를 잡았다. 빵의 품질을 이루는 특성들, 이를테면 고소한 풍미와 따뜻한 감촉, 풍성하게 부푼 외관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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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여행……. 좋아하세요?</strong>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 동안 제주도에 머물렀습니다. 출장이야 늘 다녔지만 ‘업무와 무관한 여행’은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대충 햇수로 4년 만인가……. 그렇지만 벼르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제가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어요. “꼭 귀찮고 힘들게 먼 데까지 가서 다니며 뭘 보고 먹고 해야만 하는 걸까? 그러한 절차를 통해야만 비로소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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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개인의 신념이 사실을 대체하는 사회</strong>
2022년 6월 1일 지방 선거가 끝났지만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골이 깊다. 이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586 용퇴론’이 대두되면서 확산하고 있다. 기성의 정치인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박 전 위원장을 두고 “어리고 여성이어서” 잘못되었다는 식의 비판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대 남성을 대표한다는 국민의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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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의적 로빈 후드, 로빈 후드, 후드</strong>
<넷플릭스>,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지요? 저는 옛날 영화들을 다시 보는 용도로 씁니다. 이때 ‘옛날 영화’란 1990년대의 할리우드 상업 영화를 의미합니다. ‘볼 만한 영화’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가 아닌 외화,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던 때. 집집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고 가족의 여가 활동에 이를 적극 활용하던 때. 그리고 그러한 문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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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혐오의 주체가 되었던 페미니즘</strong>
2020년, 혐오의 주체가 되었던 페미니즘 새해가 밝았던 2020년 1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합격했다. 한국 최초의 오픈리[1] 트랜스젠더 박한희 변호사를 롤모델로 삼았다던 그는[2] 성소수자 인권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와 함께 법과대학에 지원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그는 수많은 질타와 비난 속에서 입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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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연주·청취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That Thing You Do!>(1996)는 대중음악을 주요 소재로 하는 톰 행크스의 첫 연출작입니다. 톰 행크스는 영화 속 가상의 음반사인 ‘플레이톤’ 소속의 제작자 화이트역으로 직접 출연합니다. 비록 흥행에 크게 성공하진 못했으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적절한 배치와 활용이 돋보입니다. 영화는 지역 밴드였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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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갬성 쩌는 갬성의 갬성 카페</strong>
지난 4월 초, 코미디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에 올라온 한 영상이 이른바 구글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중순 현재 구독자 수가 갓 7만에 도달한 중형 채널임을 감안하면 어느덧 90만 회를 넘어선 조회 수는 그야말로 ‘떡상’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래>라는 제목에 2분 남짓 되는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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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건강식품과 가상현실</strong>
‘띠링!’ “???” 어느 날부터 눈 앞에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비타민B2 일일 권장량 1200㎍를 달성하셨습니다.’’체력이 2 올랐습니다.’‘힘이 1 올랐습니다.’‘민첩이 1 올랐습니다.’‘구순염, 구각염이 해제됩니다.’‘신진대사가 일시적으로 활발해집니다.’ 건강식품을 소재로 퓨전 판타지 소설을 써 본다면 이런 설정이 가능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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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우정, 거짓말, 법
<그린마더스클럽>(라하나 연출, 신이원 극본, 2022.04.06.~2022.05.26. JTBC 방영)은 자녀의 영재학교 입학을 위해 고투하는 초등 커뮤니티 ‘엄마들’을 통해, 입시경쟁 체제와 가부장제하에서 여자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모습을 재현한다. 엄마들은 서로를 자녀의 이름으로 부른다. 김유빈, 김영빈 남매를 둔 변춘희(추자현 분)는 ‘유빈 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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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믿고 거르는 꿀팁</strong>
* 아래의 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제의 인물, 사건과 약간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프롤로그]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어요?” 자연스럽게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또렷한 이목구비, 갸름하고 각진 턱. 아담한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서면 인사를 건네는 이 외국인 청년에게는 다소 어눌한 한국어 발음마저 장점이 되어버린다. 서울 모처에 잘생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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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성폭력 가해자가 나를 공론화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운영위원의 성폭력을 공론화합니다.” 지난 2020년 10월, 페이스북에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의 성폭력 사건을 고발한다는 글이 게시됐다. 자신을 ○○이라 소개한 작성자는 남함페가 일전의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된 절차 없이 무마시켰고, 이후에 발생한 운영위원에 의한 성폭력 사건까지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규모는 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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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정치에 관한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 그리고 투표율</strong>
명절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십중팔구는 나이든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시작한다. 믿어서 이 사람을 뽑았는데 지금 보이는 결과가 형편없다느니, 정치인들은 모두 똑같다느니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이윽고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당신은 누구에게 투표했냐는 질문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평상시에 거대 정당을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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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무엇이든 체험해야 한다, 혹은 체험하면 안다는 믿음</strong>
“슬아씨! 페이스북에서 본 것 같은데, 물고기 키우고 계시죠?” 서로 연락처만 교환했을 뿐 이렇다 할 교류가 없던 지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 네. 키우죠. 왜, 집에 어항 하나 놓으시게요? 견적 좀 봐 드릴까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딸이 어린이집에서 자연 체험 학습으로 물고기 몇 마리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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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ESG 뒤집어 읽기</strong>
지속 가능성으로 향하는 실천적 지침들은 우리가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사회 준칙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생활 양식을 청산하고 공존ㆍ공영을 달성하자는 기치Slogan로서 인류라는 범주 내부에 뿌리를 내린다. 인류를 보전하고 지속하기 위한 대안, 이른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새로운 성장 전략은 환경과 생태, 자원의 순환부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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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리뷰 전쟁</strong>
💖💖💖사진 리뷰&찜 하기 이벤트💖💖💖 1. 비엔나 5개2. 메추리알 5개3. 납작당면 2줄4. 치즈스틱 2개5. 야끼만두 2개 🙏다 드신 후 별점 5점과 사진 리뷰를 올려주세요🥰🙏요청사항에 <리뷰 이벤트 참여 + 품목>을 꼭 적어주세요!!! 음식을 주문할 때 ‘서비스’를 요구하는 행위는 배달 어플에서 하나의 이벤트처럼 자리를 잡았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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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별에서 온 그대, 안티 페미니스트 ②</strong>
처음으로 참여한 오프라인 활동은 성재기 추모 집회였다 ‘성재기 추모 집회’란 구 남성연대의 대표 고(故) 성재기의 기일에 그를 추모하고 이념을 기리기 위한 집회다. 고 성재기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활동한 ‘남성 인권 운동가’로, 페미니즘은 남성의 인권을 부차적인 요소로 다룰 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남성은 가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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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중적인 주인-대리인 문제</strong>
2022년 8월 15일의 KBS 보도에 따르면 [1] 윤석열 대통령이 업무를 잘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28%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8월 초반부터 2주 동안 20%대에 머무르고 있다. 대통령은 한때 지지율 하락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꿋꿋이 매진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는데 여론조사는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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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모두가 젖어 버리는 1회용 노동</strong>
“ … 머리 젖습니다~♪ 옷도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양말까지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말 다다 젖습니다~♬ … 여기는 아마존입니다. … 머리부터 머리, 머리부터 옷, 머리부터 신발, 머리부터 양말, 옷, 머리, 신발, 양말, 신발, 양말, 머리 싹 다 젖습니다~♪ … 젖습니다. 안 젖을 수 없는 여기는 아마 아마 존~♪ … “ 얼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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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별에서 온 그대, 안티 페미니스트 ①</strong>
2020년 8월 29일. 850일 동안의 참여 관찰을 마무리하던 날.나는 몸담고 있던 안티 페미니즘 단체들의 채팅방을 나왔다. 그래도 그간 감사했다고 인사는 해야겠지? 아니야, 여기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걸. 수차례 대화창에서 메시지를 쓰고 지우다 작별 인사는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만 따로 하기로 했다. 우왕좌왕했던 나날에 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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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사과하는 법</strong>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기량을 겨루는 이른바 ‘대회’의 수상 실적은 분야를 막론하고 현업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이력 사항이다. 커피 업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유수의 기관 단체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형식의 커피 경연 대회는 바리스타를 비롯한 업계 종사자에게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의 기회이자 애호가나 일반 대중에게 있어서는 문화의 교류와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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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strong>
“이것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싸이월드 시절에 탄생해 아직까지 종종 회자되는 ‘밈’을 인용하며 시작했습니다만, 음악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약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것은 쇼핑,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위의 밈은 소비의 여러 측면을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나라에서 허락하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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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공지] 독자 여러분께 필진 및 연재 관련 변동 사항을 안내 드립니다</strong>
<취향과 판단> 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에디터 구슬아입니다. 필진 및 연재 관련 변동 사항이 있어 아래와 같이 안내 말씀 드립니다. 저희 잡지를 향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앞으로 더 유익한 지면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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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마이클 샌델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strong>
현재 영부인 김건희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받은 석사 학위 논문과 국민대학교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사회 각계각층의 문제제기 한 가운데에 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를 비롯한 교수 단체의 발표에 의해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구성하는 860개의 문장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220개 문장이 다른 문헌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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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투쟁하지 않는 노동자’ 만들기</strong>
위험한 노동자와 프롤로포비아(prolophobie) 브누아 브레빌(Benoît Bréville)은 프랑스의 수도권에서 빈곤율과 이민자 비율이 가장 높은 센생드니 지역을 중심으로 프롤레타리아 낙인찍기, 즉 프롤로포비아(prolophobie)가 2세기에 걸쳐 지속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는 19세기에 센생드니 지역에 공장들이 들어서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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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읽을 수 없는 ‘얼굴들’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strong>
선선한 바람 불어 날 좋은 주말 저녁, 번화가의 어느 골목을 걷다 보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나에게 돌진한다. 행여라도 누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까 손깍지를 꼭 낀 커플들이나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젊은 부모들. 그런 곳에 오도카니 서 있으면 사람들은 뭐가 저리도 즐거운 것일까가 나도 모르게 궁금해진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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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장인 정신, 그 공허한 수사</strong>
주전자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원두 입자 위로 떨어지는 장면. 차곡차곡 나선으로 쌓여 가는 황갈색 거품. 똑똑똑 박자에 맞춰 정적을 깨는 물방울 소리. 이런 데에는 기능 이전에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하긴,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기호 식품은 차고 넘치는데도 유독 번거로운 이 검은 음료를 인류로 하여금 수십 세기 동안 음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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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사실상 한국인’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strong>
일본 오사카 소재의 부동산 회사에서 운영하는 <오사카에사는사람들TV>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오사카 및 인근의 맛집과 여행지에 관한 영상을 주로 업로드하는 인기 채널인데요, 출연자인 ‘마츠다 부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합니다. 멋진 외모와 세련된 태도에 완벽한 한국어 실력까지 갖춘 인물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마츠다 부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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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러셀 커크의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strong>
이 책의 제목은 도발적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라니 말이다. 영어 원제목을 보면 “보수주의에 대한 간결한 안내서(Concise Guide to Conservatism)”이다. 가끔 번역을 하고 나면 제목 선정에 저자와 역자의 의도와는 다른, 출판사의 입김이 들어가기도 한다. 출판사의 입김을 걷어내고 책의 내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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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Don’t Look up 전략과 노란 봉투법</strong>
한국은 1919년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에 1991년,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가입 후 30년이 넘은 시점이 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는 바로 모든 가입국에 대한 ILO의 요구, 즉 190개 협약의 핵심 8개 중 미비준된 4개 항목에 대한 비준 준비였다.[1] 2020년을 기준으로 네 가지 핵심 협약 미비준 국가는 한국, 중국, 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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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인간의 죽음, 배터리의 전소</strong>
2022년 10월 15일에 발생한 두 건의 사고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생산 체계의 모순을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이날 오전에는 SPC 그룹에 속한 SPL 평택 공장의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온라인 상에서는 20대 노동자가 작업 중 소스 교반기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는 기사에 뒤이어 그의 안타까운 개인사와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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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님들, 제가 이상한 거예요? 저만 그래요?”</strong>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연이 게시되었다. 최근 방문한 카페에서 겪은 일에 대해 여러 ‘방구석 대법관’ 들의 의견을 구하면서도 내심 자신의 억울함에 ‘공감’ 해 주기를 바라는 인상이 짙게 깔린, 온라인 세상을 살피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는 종류의 게시물이었다.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각색했다. 편의상 ‘A’라 부르게 될 사연 속 주인공을 따라 그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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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잘 죽는 법: 제보당의 야수와 토마 답체</strong>
1764년, 프랑스의 제보당(Gévaudan) 지역에서는 사람이 짐승에게 공격을 당해 중상을 입거나 잡아먹히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거대한 몸에 붉은 털, 긴 주둥이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이 짐승은 늑대를 닮았으나 늑대는 아닌, 정체불명의 야수였다고 합니다. 야수가 사람을 먹이로 삼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프랑스 왕실이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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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화가 되어 버린 사랑의 사문서(私文書)</strong>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스마트 기기의 등장은 영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핸드폰의 사진 촬영과 비디오 녹화 기능을 활용한 기록과 편집, 메신저로의 연락 교환과 각종 앱의 구동을 통한 사적 또는 공적 행위가 우리의 생활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따라서 픽션일지라도 현실 세계의 재현과 무관치 않은 영화가 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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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파편화된 사회와 밥상의 윤리</strong>
『연대의 밥상』은 철거와 연대, 그리고 일상의 사소함들을 한데 엮어 버려진 존재들과 독자들을 한 자리로 호출한다. 홀로 살아갈 수 없지만 혼자 살아가도록 만드는 파편화된 사회. 연대의 밥상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지탱할 마음 한 점을 얻는다. 추운 겨울을 더욱 모질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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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정신증 친화적'이지 않은 군대, 병력 관리의 미래는?</strong>
이 책은 한 개인이 군대에 들어가 느끼는 우울감의 삽화들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군인은 군대의 억압적인 구조 아래에서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반복하여 겪는다. 한국군은 어떻게 자신이 징집한 이들 모두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묻는다. 『내 이름은 군대』는 저자인 이상문이 군복무 중 느끼는 감정을 보여준다. 군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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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OTT 시대 ‘막장’의 욕망 ①: 막장과 시즌제, OTT의 만남</strong>
『드라마의 모든 것』은 여러 연구자들과 드라마 관계자들이 한국의 미디어 산업 구조를 분석하며 드라마를 비평한 책으로, 동시대 드라마 콘텐츠와 그 제반 환경에 대한 기초적 관점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기본서이다. 이 책은 드라마가 한국사회의 “연속적 스토리텔링”[1]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매체이자 핵심적인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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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를 돌보고 세상을 향유하는 기쁨</strong>
공부가 위험하다. 더이상 배움도, 가르치는 일도 무의미하다. 더불어 우리의 삶이라고 안녕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말석을 위해 자신과 반목해야 하는 시대,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을 멋지게 향유하기 위한 공부를 전하는 작가의 메시지. 공부가 세상을 망치다 나는 어느 시점에 “기술 교육은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을 테지만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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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감정화하는 사회, 반대로 가야 하는 비평</strong>
단순한 감정의 동일화를 공감이라, 편안한 기분을 조성하는 언어만을 가치 있는 언어라, 자기 표출의 욕망으로 움직이는 유저를 유일하게 가능한 주체의 형식이라 말하는 세상, 문학과 비평은 자기가 선 조건에 적응하거나 그것을 거스르며 새로운 공공성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명징‧직조 논란 2019년, 평론가 이동진이 영화 <기생충>을 보고 자신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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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공지] 추가 발행 관련 안내</strong>
<취향과 판단> 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십니까, 에디터 구슬아입니다. 윤희상 작가의 <텍스트를 째려보다>의 이번 달 연재분인 주디스 휴먼의 『나는, 휴먼』의 서평은 내일(2022년 11월 26일) 중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정해진 날짜를 넘겨 추가 발행을 하게 됨에 따라 이용에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추가 발행 완료] 위의 공지 사항인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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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투쟁을 멈추지 않기 위해 오늘은 역사와 만납니다</strong>
미국 장애 운동의 선구자적 인물인 주디스 휴먼의 삶의 내력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으로, 그의 투철한 삶의 역사와 만남으로써 ‘몸’과 ‘건강’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지, 한국에서의 장애 운동의 방향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또 무엇을 문제화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책은 독서를 마치는 순간 책의 세계도 막을 내린다. 수미일관하게 책 속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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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음식물 쓰레기도 리볼빙이 되나요?</strong>
유통 기한과 소비 기한 식품 포장지에 적힌 한 줄의 숫자, 제품의 부패와 식품 안전 사고를 일선에서 견제해 온 유통 기한이 2023년 1월 1일부터 소비 기한으로 전환된다. ‘시장에서 상품을 유통할 수 있는 제도적 한계 기간’을 나타내는 유통 기한은 ‘적정 보관 방법을 준수할 경우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을 의미하는 소비 기한에 비해 다소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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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취향과 판단> 11월호, 함께 읽는 책 특집 EVENT</strong>
“책을 읽으려고 해도 볼 만한 책이 없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온통 비슷비슷한 책들뿐이다. 부자 되기, 연애하기, 힐링 하기……. 이제 지겹다.”와 같은 한탄을 종종 듣습니다. 부자 되는 법, 연애하는 법, 자기 마음을 치유하는 법에 관한 책이 다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더 다양한 주제와 관점, 그리고 논의들과 만나고 싶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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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정서적 양극화와 정치의 미래</strong>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팬덤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유권자들이 정당의 특정 인물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충성은 정책의 방향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치적 팬덤화의 대표적인 예시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부터 발견할 수 있다. 고도 경제 성장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 시대에 노스텔지어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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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업 사원 나왔습니다: 올해의 영화와 드라마 보고 가세요</strong>
올해도 이렇게 저문다. 여름의 뙤약볕과 일렁이는 열기보다는 겨울의 차디찬 공기와 그 냄새를 더 좋아하지만, 해가 바뀌는 건 늘 조금은 서글프다. 한국식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 때문이 아니라 아직 올해와 작별하기에는 떠밀어버릴 수 없는, 붙잡아야 할, 나아가 시간을 들여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사건, 사람, 감정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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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집구석 원예론(1): 풀때기 그거, 키워서 뭐에 쓰나</strong>
잘 오셨습니다, 집구석 원예의 세계에 누군가 취미를 묻는다면 독서를 첫손에 꼽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난 이후로는 그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모름지기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겨 하는 일’이니까요. 직업적 활동으로서 읽기를 수행한다면 당연히 전문성의 추구가 따라야 하고 그러다 보면 책을 읽는 행위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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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유용성이라는 안경</strong>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계를 놀라게 하던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10월 28일 인수한 이후 3주 동안 직원 중 2/3가 넘는 4,700명을 정리 해고했다. 12월 20일 <테슬라>, <트위터>, <스페이스X> 등 하나같이 유명한 회사들이 일제히 부당 해고 소송에 휘말린 상황이다. 모든 상황을 쓸모나 이용할 만한 특성으로 판단하는 유용성(有用性)의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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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카페쇼 유감</strong>
카페쇼, 커피인의 축제? 커피 애호가에게 11월은 특별한 달이다. 국내, 아니 이미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커피 박람회로 자리매김한 <서울 카페쇼>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올해로 벌써 20회를 넘긴 서울 카페쇼는 해마다 규모가 상당한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 룸을 인파와 커피 향으로 채웠다. 행사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여러 지역 단체에서도 앞다투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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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OTT 시대 ‘막장’의 욕망 ②: 임성한의 귀환이 말해 주는 것</strong>
OTT 시대 막장 드라마의 ‘좁은 세계’와 ‘희극성’ “Pheobe(임성한) 작가의 화제의 복귀작!” 〈결혼작사 이혼작곡〉(유정준, 이승훈 연출, Phoebe 극본, 2021.1.23.~2022.5.1. TV조선 방영)의 홍보 문구이다.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했듯 2014년에 임성한이 은퇴한 후 한국 막장 드라마에서 임성한의 문법은 시효를 다 한 것으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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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순수에 묻다</strong>
순 수 純粹 “순수한 증류수, O워터로 내 몸을 개선하다.”“순수한 건강만 담아 순수한 가격으로 만들다.”“어린 찻잎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오리지널 순수 녹차” 식품이나 화장품의 투명한 외관을 지시하거나, 원재료로 사용된 동·식물의 여린 모습을 나타내거나, 때로는 다른 이질적인 성분이 섞이지 않았다는 ‘정통’의 권위를 암시하기도 하는 복잡하고 다원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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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제왕적 대통령제, 어떻게 할 것인가?</strong>
정치인 나경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출산을 하면 부채를 탕감하게 하겠다는 발언을 해 대통령실과 마찰을 빚었다. 대통령실은 나경원을 해임하였고 이후 둘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었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당대표를 선출을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이른바 ‘친윤 계열’이 아닌 나경원의 당대표 출마를 대통령실이 견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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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집구석 원예론(2): 철저히 문명적인 것, 근데 이제 자연스러움을 곁들인</strong>
자연을 욕망하기 플랜테리어를 위한 오브제 아니면 반려하는 친밀한 대상과 같은 분류 이전에, 실내 원예에서 식물이란 공통적으로 무엇의 표상일까요? 바로 자연입니다. 우리는 집에 식물을 두고 키움으로써 일상생활의 영역 속으로 자연을 끌어 들이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욕망이 작동할 때 식물은 대자연의 축소판으로서, 실내 원예는 자연의 경관과 생명력을 도회적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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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가주실게여”</strong>🙏
미국 NBC에서 포맷 라이선스를 취득해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SNL 코리아(Saturday Night Live Korea)>는 내가 즐겨 시청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초창기 방송사 tvN에서의 긴 역사를 뒤로하고 국산 ott 서비스인 쿠팡 플레이에 새로이 둥지를 튼 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근자의 미디어 콘텐츠가 인기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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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3년 1월호, '빠진 연재' 관련해서 알려 드립니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취향과 판단> 2023년 1월호의 ‘빠진 연재’ 관련해서 알려 드립니다. 이번 달 김태현 작가의 ‘그런 음식 문화는 없다’는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원고가 발행되지 못했습니다. 추가 발행을 통해 근시일 내에 빠진 연재를 보충하기 또한 어려운 상황임에 따라 부득이하게 한 호를 휴재합니다. 해당 연재의 오늘자 원고를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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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유폐(幽閉)의 소설적 징후: <북촌방향>과 그 시‧공간적 미의식</strong>
<북촌방향>이라는 문제작 홍상수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네 번째 디지털 영화이며 두 번째 흑백 영화인 <북촌방향(The Day He Arrives, 2011)>은 여러 지면에서 명실상부 홍상수의 ‘제2기’를 대표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또한,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주목을 받은 작품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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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태국과 버마의 민주화 시위와 20대 대학생</strong>
TV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민주화 시위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유시민 씨는 ‘항소이유서’를 썼던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토로했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대략적으로 이러하다. 유 씨는 경찰이 자신을 만나자고 해서 다방에 슬리퍼를 끌고 나갔는데 바로 체포를 당했다고 했다. 이후 변호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변호사와 유 씨는 항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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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서울에는 있고, 지방에는 없는 것</strong>
가게를 접었다 영업 준비를 마치고 마른 행주로 손을 훔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접어야겠다. 뭔가를 시작하는 시점에 으레 한 번쯤 떠올려 보게 되는 마지막 순간의 모습. 2011년 이 작은 카페를 열던 시기에도 간간이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친 결심은 상상처럼 극적이지 않았다. 그 결심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 텅 빈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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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작은 밥풀떼기들의 거대한 아우성이 저류에서 들끓고 (1)</strong>
1. “말똥하고 맨숭”[1]하지 않은 ‘세 자매의 세계사’ 비평적 견지에서 ‘좋은’ 드라마란 무엇일까? 이 질문이 그 자체로 위태롭다고 한다면 아마 그 이유는 ‘좋음’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행위가 어느 정도의 상대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작품이 제작·유통·배급되는 환경과 작품이 놓인 문화정치학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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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집구석 원예론(3):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에 더하여 숙련</strong>
비록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 개업을 하면 축하의 의미로 화초를 보내는 문화가 있습니다. 식당, 카페, 미용실, 부동산, 병원 등의 영업장에 놓인 식물들은 보통 개업 축하 화분이었던 것이며 또 상당히 높은 확률로 잎이 누렇게 떴거나 해충이 우글대거나 어딘가가 썩지 않았으면 말라비틀어져 있습니다. 일부러 생명력이 강하고 관리가 편하기로 유명한 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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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공지] 2023년 2월호, '빠진 연재' 관련해서 알려 드립니다.</strong>
구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취향과 판단> 2023년 2월호의 ‘빠진 연재’ 관련해서 알려 드립니다. 이번 달 유윤열 작가의 ‘가장 오래된 생존기: 노동’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원고가 발행되지 못했습니다. 해당 연재의 오늘자 원고를 기다리셨을 구독자 여러분께 실망과 불편을 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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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대단한 취미는 없습니다만</strong>
나는 ‘취미 부자’가 아니다. 누가 취미를 물으면 “글쎄, 취미랄 게 딱히 없는데요.”라고 답하곤 하는데, 뚜렷한 취미의 부재는 나의 성향과도 관련된다. 나는 루틴형 인간이 아닌 과몰입형 인간이다. 그렇다 보니 충분한 몰입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며 정신적·신체적으로 이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많이 자고, 빛을 쐬고, 향을 맡고, 쓸데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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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음악 그리고 시간: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에서의 감상</strong>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힙’하고 ‘트렌디’하다고 여겨지는 까페에 가면 1980년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레트로를 표방하는 바버 샵에서도 1980년대 미국의 디스코를 즐겨 튼다. 이처럼 과거의 음악이 유행을 타고 전국에 퍼지고 있다. 부모님들은 “옛날 음악이 지금보다 더 좋아.”라는 이야기를 한다. 예전 가수들은 다들 가창력도 좋은데 지금 가수들은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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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질주의 마음 </strong>
우리는 언제 달리는가. ‘달리기’의 여러 변주를 나타내는 한자어들을 떠올려본다. 질주(疾走), 분주(奔走), 폭주(暴走), 활주(滑走), 도주(逃走), 탈주(脫走) 등등. 대개는 유쾌와 경쾌보다 번잡과 초조의 감각이 강한 낱말들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달리기는 어떤 형상으로 각인돼 있나. 아마 대개는 시간을 한없이 쪼개 쓸 수밖에 없는 고단한 현대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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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덕업일치'로서의 나의 음식문화 연구</strong>
취미를 일상 안으로 들여 놓는 일은 가능할까?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으로 점철된 것이 오늘날의 일상이라면 이는 분명 취미를 탐색하거나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다. 취미는 흔히 일상과는 분리된, 일상의 탈출구 혹은 활력의 재생산 따위의 기능으로 간주되며 자신의 삶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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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자전거 동호회의 흥망을 통해 바라본 사람, 장소, 환대, 그리고 소비</strong>
나는 자전거를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안장에 몸을 싣고 바람을 가르면 때로는 낭만적인 감상에 빠져들기도, 때로는 스포츠맨으로서의 고양감에 도취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자전거 생활에서 멀어졌지만 자전거가 매력적인 운동이자 취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자전거 자체는 조형적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날렵한 프레임의 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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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집구석 원예론(4): 취미 원예의 심연으로, 기꺼이 웃으며 가라앉기</strong>
실내 원예는 정말 ‘갓성비 취미’일까?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스킨답서스가 하나에 1,900원, 적당히 쓸 만한 플라스틱 화분과 받침이 한 벌에 3,000원, 가장 적은 용량의 분갈이 흙이 2,000원 안팎, 없어도 무방하지만 있으면 더 좋을 기타 부자재에 4,000원 가량을 지출…….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대략 5,500원 정도면 나만의 화분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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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공지] 이번 달은 '취미 특집'입니다.</strong>
<취향과 판단> 2023년 3월호는 ‘취미 특집’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아주 잠시 동안 우리 웹진의 정체성은 ‘취미 잡지’였습니다. 결국 문화/정치 비평지가 되었습니다만, 취미를 소재로 한 글을 싣는 것에 대한 욕망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취미야말로 가장 사적인 동시에 사회 일반의 경제적, 문화적 조건 및 경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생활에 필수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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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 급식 실화냐?: 식판 위의 '레전드'들</strong>
두 ‘레전드’ 단체 급식용 식판에도 봄이 올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단체 급식을 둘러싼 두 가지 ‘레전드’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편의 식판에는 밥과 국, 그리고 김치 몇 조각만이 담겨 있다. “수용소도 이렇게는 안 주겠다.”, “저게 5,500원이라니… 반대 의미로 놀랍네요.” 등 직장인의 체념과 냉소로 얼룩진 이 이미지는 ‘구내식당 레전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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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보수 정권은 왜 일본에 약할까?</strong>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월, 일본에 의한 강제 동원 배상에 해법을 제시한다며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에서 정부 측을 대변하는 인물들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것이 일본 기업 혹은 정부에 의한 것이 아님이 예정되어있었다. 제3자인 한국 기업들이 기금을 마련하여 우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것이다.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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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작은 밥풀떼기들의 거대한 아우성이 저류에서 들끓고 (2)</strong>
3. 희생 없는 살부(殺父)와 ‘미친 여자’라는 유령 앞서 살펴본 바 <작은 아씨들>의 거시적 틀이자 서사의 역사적 원점에는 위계 관계에 있는 두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 하나는 ‘아버지 박정희 시대’라는 실재했던 지배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지배 질서가 왜곡된 방식으로 외삽된 한 픽션적 판본인 ‘새롭지만 낡은 아버지’ 원기선 장군의 질서다. 베트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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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저는 이제 물러나 보겠습니다</strong>
턱밑의 칼처럼 찾아온 나의 위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상당히 급작스럽게. 퇴사가 결정된 시점에 맞물려, 전세 보증금을 올려 달라는 요구에 밀려 4년간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와야 했다. 원래 내던 만큼의 보증금으로 이사할 수 있는 집을 찾으면서 방을 한 칸 줄였다. 이사를 준비하다 보니 집에 맞춰 살림이 잔뜩 늘어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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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플라스틱 빨대에 대하여</strong>
요리를 일련의 코스로 구성해 연출하는 파인다이닝처럼, 한 잔의 음료를 유사한 관점으로 이해해 볼 여지가 있다. 고객의 입이 닿는 기물의 질감, 첫 모금의 인상, 마시는 방법, 가령 시원하게 들이켜게 할지 음미하게 할지. 고유의 향이 있다면 그것을 코 끝에 가까이 가져가 흠향하게 할지 아니면 다소 멀찍이 떨어뜨려 은근하게 퍼지는 인상을 감각하게 할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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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연애 잘하는 비법 알려 드립니다? (1)</strong>
연애를 돈 내고 배운다고? 잠들기 전 유튜브 쇼츠 목록을 내리다가 생각했습니다. 연애 가르쳐 준다는 영상이 뭐 이렇게 자주 나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연애를 무슨 수로 가르치고 배우지? ‘연애 하는 방법’과 ‘연애 코치’, ‘연애 컨설팅’으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관련 채널이 엄청 많더라고요. 하나같이 “하루 3분”만 투자하면 된다, “모든 해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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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태국 총선: 민주화의 시작인가, 또 다른 혼란의 서막인가?</strong>
2023년 5월 14일에는 쉬이 잠에 들 수 없었다. 선잠을 자다 다시 일어나 인터넷에서 선거 개표 현황을 검색하기를 반복했다. 박사 학위 논문을 ‘태국 정치’에 관한 주제로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태국에서 벌어지는 선거 및 정치 참여의 양상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이 컸다. 태국 군부가 2014년에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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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프리랜서 지옥, 마케팅 초과 사회</strong>
마케팅 초과 사회 TV 속 간접 광고와 온라인상의 바이럴 광고, 신문 지면상의 광고성 기사와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들, 그리고 끝없이 눈에 걸리는 길거리 위 상표와 디자인까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이라는 의미의 광고는 기존의 정형적인 방식을 넘어 일상 곳곳에 스며들게 되었다. 세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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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스티로폼 박스에 갇힌 신선함</strong>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매주 세 차례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 나는 주로 늦은 시간, 공지된 마감 시간 직전 즈음 해서 쓰레기를 내다 놓으러 나가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매주 세 번씩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마주한다. 얼마 전부터는 그 쓰레기 무더기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택배를 시키는지, 배달 음식은 또 얼마나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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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카페에서 공부 하는 사람들</strong>
카페를 독서실, 집, 혹은 사무실 삼아 공부를 하거나 개인 작업을 하는 부류를 이르는 신조어인 ‘카공족’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으로 풀어 쓸 수 있다. 이제는 카페 손님의 대다수를 차지한 그들은 소중한 고객일까 아니면 눈엣가시 같은 진상 불청객에 불과할까? 카공족의 입장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교환 가능한 재화로 치부하는 자본주의의 명령에 따라 값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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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저의 이름을 선물하려 합니다. 저 자신에게요.</strong>
“그러니까 어디 가야 할 곳이 있는 듯이, 시작된 어떤 일이 있는 듯이, 해야 할 어떤 일이 있는 듯이, 그렇게 계속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모든 건 말[言]의 문제로 귀결돼, 그걸 잊어서는 안 돼, 나는 잊지 않았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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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연애 잘하는 비법 알려 드립니다? (2)</strong>
픽업 아트가 과학적, 이론적이라고? 픽업 아티스트가 전문가, 컨설턴트, 고수를 자처하며 남에게 연애를 가르치는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신감은 어디서 비롯할까요? 그들은 어떤 근거를 들어 (잠재적) 수강생들에게 픽업 아트가 돈을 내고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비법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일까요? 픽업 아티스트들은 픽업 아트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에